김인화 金寅化

줄기차게 비 내린 이튿날 아침-

안개속 자태 드러내는 봉우리가 황홀

 

10여년 만의 해외여행이라 괜히 몸도 마음도 바쁘기만 했다. 여행지에 가보면 사정은 달라지지만 못할 때 못하더라도 스케치북도 여러권 챙겨놓고 캔버스도 넉넉히 준비했다. 특히 말로만 듣던 넓은 나라 중국 땅을 가는 계획이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일행이 두 시간의 비행기 여행 끝에 상해를 거쳐 계림에 도착안 것은 깊은 밤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남달리 새벽잠이 없는 터라 혼자 일찍 이강을 찾아 나섰다. 어젯밤 줄기차게 내리던 밤시는 해맑은 아침을 열어주고 있었다. 붉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안개 속으로 기이한 산봉우리가 하나둘씩 그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의 장난이라기에는 너무나 황홀하다. ‘산수천하제일’ 이라는 말 그대로다. 바로 관념산수라고만 여겨오던 중국 실경산수화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아침 10시경에야 유람선에 올랐다. 한강의 유람선만한 배가 수십 척 강을 메웠다. 안내원에 따르면 1백 여척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 배들이 이강을 따라 한꺼번에 일렬종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가 움직일 때마다 실로 거대한 석회암 지대에 우뚝 우뚝 겹쳐선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합창하듯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처음 풍경에 흘린 나는 스케치해보려는 욕심으로 선상에 올랐으나 그리려다 보니 계속 이어지는 신기한 풍광들이 연필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카메라 두 대로 닥치는 대로 찍어댔다. 이것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머리 위엔 푸른 하늘이, 발 아래에는 옥색물결의 여울이 소리를 낸다. 그리고 멀리 물소떼들이 한가롭다. 간혹 대나무 뗏목을 탄 어부들, 가마우지라는 새, 상하의 계절탓인가, 한쪽에서는 모를 심는가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벼를 거두고 있다. 이런 진풍경속에서 4시간을 유람하다 양삭(陽朔)에 도착했다.

 

모든 것들이 신의 작품들, 자연의 섭리가 무섭다는 것을 느끼며, 잠시나마 태초의 원시 속에 빠져든 것 같았다. 다음 행선지는 백두산이었다. 백두산 근참을 위해 계림에서 북경, 장춘, 연길, 이도백화를 거쳐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이라면 어디라도 다 좋아하는 터라 가벼운 흥분까지 느꼈다. 일차 등정은 지프차로 정상가지 오르고, 두 번째는 몇몇 대원들과 새벽 4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호라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날이 밝자 허기가 찾아들었다. 전날 중국 아가씨들한테 얻은 넓적한 한국의 떡과 같은 것에 사과, 빵, 햄을 썰어 넣고 말아서 만든 것을 조금씩 배급해 허기를 면했다. 백두산 고산 지대에서 서식하는 조그마한 들꽃들, 그중 흰색 산용담은 요염하고 끈기 있는 생명력을 한껏 과시하며 우리 일행을 맞았다. 정상에 오르니 어제의 맑은 날은 어디가고 안개.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려 5m 앞도 보이질 않는다. 또 다른 백두산의 자채를 트끼게 했다. 스케치 일정이 끝나고 도문(두만강)을 향하는 길은 아쉽기만 했다. 백두산을 반쪽밖에 볼 수 없었기에 더욱 그런가 보다.

 

- 작가노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