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용 인 朴容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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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집을 발간하며

 1964년 대학 시절, 생애 처음으로 국전에 출품하기 위하여 밤잠을 아껴가며 작업에 몰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미대생들은 앙포르멜이나 액션 페인팅 같은 새로운 미술사조에 너 나 할 것 없이 심취해 있었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대상을 자유롭게 해석하여 현대적인 미적 감각과 미학을  반영하는 모더니즘과 포비즘에 크게 경도되었다. 이후 나는 나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하고자 쉼 없이 노력하였는데, 주로 기하학적이고 평면적인 형태 해석을 기초로 하여 비현실적인 색채와 야수파적인 격정을 결렬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던 중 1981년 파리 유학을 통해 내 작업에 대한 작은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동안의 방황을 잠시 접어둘 수 있었다. 그리고 파리라는 예술 도시에 동화되면서 전과 달리 미적 감성이 풍성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풍의 향기가 물씬 밴 낡은 집과 골목 풍경들은 내게 완결된 드로잉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면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함께 담으려고 애썼다.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나만의 조형 언어와 작품세계를 비로소 정립할 수 있었다. 이번 화집에 수록된 작품은 1990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60년에서 1975년까지의 작품이 상당 부분 소실된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용인 회화 50년」

   2014년 11월 17일 발행

☆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작가노트

나는 어떠한 사물이든 눈에 닿는 모든 것 또는 설사 망막으로 파악할 수 없는 비 가시적인 것일지라도 그림의 주제로 삼는다. 풍경으로 비롯되는 소재에서 때로는 정물이나 인물에 초점을 모으기도 하는 구상적 형상에서 이미지를 풀어 놓고 있다. 나의 그림의 형상들은 침전된 분위기 속에서 파악되어지거나 묘사적으로 접근된 형사이 아닌 심의에 의해 파악 되어진 형상을 자류로운 변용과 의상(意想)으로 전개 시켜 시적 정감을 수반한 채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에 의해 굴절되어 나타난 형상들이다. 회화에 있어 창작성이란 조형적인 요소 ( 선, 면, 색등)를 어떻게 배열, 조합 하고 독자적인 형상성을 어떻게 표출 시키느냐에 따라 창작의 참뜻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나는 다양한 소재 및 대산을 간결하고 함축적인 조형 어법으로 재현함에 있어 나이프로 물감을 두텁게 발라 긁고 문질러 마띠엘로 깊이와 무게를 더해주고 붓으로 부드럽게 처리한다. 즉 나이프를 사용한 두터운 질감의 효과에 의해 다져 지는 견고한 조형성 위에 마치 안개가 스며들 듯 빈틈없이 채워지는 번짐 기법의 색채 효과로 미묘하고 부드러운 공간감을 조성 시킨다. 오랜 연륜의 두께와 퇴락한 표정을 지어내는 마때엘의 효과와 보호막 처럼 도포되는 붓에 의한 처리가 고태(古䈚)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이는 신라시대의 토기나 녹슨 금속 공예에서 볼 수 있는 마띠엘과 수묵 담채화에서 화선지에 번져 들어 가는 먹의 농담에서 신비스러울 정도로 미묘한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견고함과 부드러움을 조화롭게 접목 시킴,로서 부조화와 조화라는 미묘한 형식적 논리를 이끌어 내고자 함이다. 대립 적인 이미지를 대비 시키는 데서 비롯되는 시각적인 긴장감을 통해 선명하고 명쾌한 조형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색채 또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사용하기를 주저하는 검정에 가까운 어두운 색을 기조 색으로 한다. 거기에 원색적인 이미지의 황색, 청색, 초록, 보라 등  밝은 색을 대담하게 대비 시킨다. 모든색들은  캔바스에 옮김으로서 채도가 놓아 보여 그림이 화려하게 느껴지고 선명 해진다. 대상을 단순화하고 평면적인 채색기법을 이용함으로서 시각적으로 명쾌해진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상황 제시나 설명적인 묘사가 전혀 필요 없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성적인 반응으로서의 인상(印象)이다.
                                                                            

                                                                                                                                             박용인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북한산의 위용.jpg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송지호에서 본 설악.jpg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매물도의 오후.jpg